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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직장생활기] 시키는 대로나 해!

일상생활
Author
Daniel
Date
2018-04-01 21:39
Views
1916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한국 고객에게 뜬금없이 납기가 지났는데 제품이 왜 입고되지 않느냐는 메일을 받았어요. 확인해보니 벌써 이 내용으로 4번이나 메일을 보냈었고 답장도 4번이나 했더라고요. 자꾸 작년 납기로 되어있는 품목을 못 받았다고 말씀하시기에, 여러 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미 작년에 송부 완료되었다고 아직 미송부 제품들인 나머지는 심지어 5월 납기라고! 그렇게 답장을 보내도 그것에 대한 확인도, 답장도 전혀 없었고 그저 항상 같은 질문만 했어요.

작년이 납기인 제품들은 당연히 작년에 모두 송부했고, 나머지 OPEN된 제품들은 올해 5월에나 송부하면 되는 거였기 때문에 자꾸 작년 납기로 되어있는 걸 왜 못 받았다고 하는 건지 너무 답답했죠. 우리는 Order 받은 대로 납기를 맞춰서 보냈기 때문에 우리 회사 시스템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못 받은 제품이 몇 개인 건지, 원래 언제까지 필요한 제품인지 정확한 내용을 요청했지만, 정확한 내용은커녕 아무런 말도 없이 그 회사의 시스템 파일만 덜렁 첨부해서 보내더라고요. 대체 자기네 회사 시스템만 보내면, 내가 그 회사 사람도 아니고 그걸 보고 어떻게 이해하라는 건지.. 알아서 공부해서 봐야 하는 건가.. 답답함을 참고, 그동안 송부되었던 제품 Invoice와 받은 오더를 모두 펴서 리스트로 정리했어요. 당연히 우리의 문제는 아니었고, 그 회사 시스템 파일 상으로는 납기가 2월로 표기되어있는 품목이 우리 회사 시스템상으로는 납기가 5월로 표시되어있더라고요. 확인해보니 오더는 5월로 한 게 맞고요. 혹시 5월 납기라고 오더를 해놓고, 지금 갑자기 필요한 게 아닐까, 아니면 5월에서 2월로 변경되었는데 우리한테 알려주는 것을 잊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슨 상황인지 얼추 이해가 되어서, 현재 이 정도 수량이 OPEN 되어있고, 그것의 납기는 이때이며, 그동안 어떤 제품, 몇 개, 언제 송부되었는지, Invoice와 함께 정리해서 메일로 작성했어요. 그리고 수량이나 해당 Order에 어떤 품목인지 알려주어야 납기를 확인할 수 있고, 귀사의 시스템으로는 확인이 어렵다고 얘기했죠. 그리고 정확한 납기를 알려주시면 남은 제품들을 송부드리겠다라고 말씀드렸어요.

하이델베르크 알트슈타트

한 30분 뒤, 그 회사의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다짜고짜 그러더군요.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말하냐고요. 아마 "귀사의 시스템으로는 확인이 어렵다"라는 부분이 아니꼬웠던 것 같아요. 네가 감히? 이런 뉘앙스였거든요. 시간 들여 고생해가며 정확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게 고마운 게 아니라 공격으로 보였다니 씁쓸도 하고 화도 났지만, 공격적으로 쓴 게 아니라 이렇게 알고 계시는 것 같아서 상황 설명을 했다고 이해시켜드리려 했어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시키는 대로 나 하라는 식이더라고요. 심지어 메일을 다시 써서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하.. 정말 회사생활하면서 최악의 날이었어요. 정말 그 한국 회사 담당자가 갑과 을의 마인드가 얼마나 분명한 사람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죠.

그 사람은 아직도 내용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아요. 아니면 이해를 했어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겠죠. 후자보다는 전자가 차라리 나은 것 같네요. 한국 회사 시스템상 자기 실수를 인정하게 되면 돌아올 불이익 때문에 인정하기 어렵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남한테 화풀이를 해도 되는 건 아니지 않나요?.. 하.. 어떻게 했어야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는지 계속 곱씹게 되네요. 짧다고 하면 짧은 직장생활하면서 이때처럼 회의감과 무력함을 느껴본 건 처음 같아요. 속상한 마음에 독일인 매니저한테 얘기했더니 그 회사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회사라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면서..
이럴 때마다 괜히 한국 고객이랑 독일 고객이랑 비교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나 봐요. 독일 고객들은 갑과 을의 관계 보다는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거든요. 안되는 걸 되게 하라! No는 절대 No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한국 고객들의 마인드에 지쳐가는 중이었는데, 오늘 이 일로 인해서 한국 고객은 다 그렇다는 색안경을 써버릴 것만 같아요.
[출처] [독일 직장생활기] 시키는 대로나 해!|작성자 Daniel